대법원은 한문 고전 번역 초고 중 교감·표점 부분은 창작성이 없어 저작물로 보기 어렵고 저작권 침해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계약 교섭 과정에서 형성된 신뢰를 저버리고 상대방이 공들인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했다면 민법상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며 원심을 일부 파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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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연구·기획처럼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 결과물이 저작권으로 보호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그것을 가져다 써도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요. 이 판결은 그 질문에 대해 "저작권이 없더라도 다른 길이 있다"는 답을 내놓은 사례입니다.
송파 문정 법률사무소 제이에서 저작권·부정경쟁 관련 상담을 하다 보면, 협업이나 계약 협상이 중단된 뒤 자료가 무단으로 쓰였다는 고민을 자주 접합니다.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9다268061 판결을 쟁점별로 정리했습니다.
사건 개요
원고는 ○○대학교 ○○연구원과 협력하여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편찬한 『임원경제지』의 번역 사업을 수행하기로 하고, 교감·표점 작업을 거쳐 번역 초고를 작성해 왔습니다. 그런데 정식 번역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협력 사업이 종료되었고, 이후 피고들이 임원경제지 중 위선지·만학지 부분을 번역·출간했습니다.
원고는 피고들이 자신의 번역본 초고를 무단으로 이용했다며 ① 저작권 침해, ② 민법상 불법행위를 주장했습니다. 제1심과 원심은 원고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고, 원고가 상고했습니다.
구분 | 내용 |
|---|---|
사건번호 |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9다268061 판결(저작권침해 등) |
결론 | 파기환송(일부) |
대상 문헌 | 『임원경제지』 중 위선지·만학지 |
원고 주장 | 번역본 초고 무단이용 → 저작권 침해 또는 민법상 불법행위 |
쟁점
원고 번역본 초고 중 교감·표점 부분이 저작권법상 저작물인지
피고들의 출간 행위가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했는지
저작권 침해가 아니더라도, 계약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행위가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가 되는지
교감·표점이란
'교감(校勘)'은 여러 판본을 비교·대조하여 문자나 어구의 진위를 고증하고 정확한 원문을 복원하는 작업입니다. '표점(標點)'은 구두점이나 띄어쓰기가 없는 한문 원문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적절한 표점부호를 붙이는 작업입니다.
원심 판단
제1심과 원심은 원고의 저작권 침해 주장과 민법상 불법행위 주장을 모두 배척했습니다. 원고 번역본 초고와 피고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불법행위 성립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대법원 판단
① 교감·표점 부분은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합니다. 창작성이 인정되려면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창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야 하고,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표현은 창작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은 교감을 통해 원문을 확정하고 표점을 통해 적절한 부호를 선택하는 것은 모두 학술적 사상 그 자체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학술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달리 표현하기 어려우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표현에 원고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② 저작권 침해도 인정되지 않는다
저작권 침해가 되려면 의거관계와 함께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유사성은 창작적인 표현 형식만 놓고 대비해야 합니다. 복제된 창작적 표현이 원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양적·질적 비중도 함께 고려합니다. 대법원은 원고 번역본 초고와 피고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고 본 원심 판단을 수긍했습니다.
③ 그러나 민법상 불법행위는 다시 심리해야 한다
대법원은 위법행위가 법률 위반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법질서의 관점에서 사회통념상 위법한 경우도 포함하는 탄력적인 개념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쟁자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로 구축한 성과물을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여 무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불법행위가 될 수 있고(대법원 2010. 8. 25.자 2008마1541 결정 참조),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도 일정한 요건에서 불법행위가 됩니다.
특히 계약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면서 상대방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했다면, 그 위법성을 좀 더 쉽게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법원이 원심에 다시 살펴보라고 한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번역본 초고 작성에 전문가들이 참여해 상당한 시간과 비용, 높은 수준의 정신적 노력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초고 중 원고가 독자적으로 연구·검토한 부분의 존재 여부나 비중을 살피지 않은 채 성과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연구원과 원고 사이에 협력·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고, 원고가 사업 종료 후 초고의 폐기와 사용금지를 명시적으로 요청한 점
피고들이 이러한 사정을 알고도 초고를 무단으로 이용했다면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한다고 평가할 여지가 크므로, 원심은 이를 구체적으로 심리했어야 한다는 것이 파기 이유입니다.
실무상 의미
이 판결은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결과물이라도, 상대방이 협력·교섭 관계에서 얻은 신뢰를 이용해 무단으로 가져다 썼다면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판결이 다룬 이른바 '성과물 도용' 법리는 이후 부정경쟁방지법에 별도 조항으로 도입되었습니다(판결 당시 제2조 제1호 (카)목, 현행 (파)목).
상황 | 검토할 수 있는 근거 |
|---|---|
창작적 표현을 그대로 베낀 경우 | 저작권 침해(의거관계 + 실질적 유사성) |
창작성은 약하지만 상당한 투자가 들어간 성과물 | 부정경쟁방지법상 성과물 도용, 민법상 불법행위 |
협업·계약 교섭 중 제공한 자료 | 신뢰관계 침해에 따른 불법행위, 비밀유지약정 위반 |
협업을 시작하기 전에 비밀유지계약(NDA)이나 자료 사용 범위를 정해 두고, 교섭이 중단되면 자료의 반환·폐기·사용금지를 서면으로 요청해 두는 것이 분쟁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이 사건에서도 원고가 폐기와 사용금지를 명시적으로 요청했다는 사정이 중요한 판단 요소로 언급되었습니다.
박경미 변호사는 변리사 자격도 갖추고 있어, 저작권·부정경쟁 쟁점과 함께 특허·상표 쟁점까지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Q1. 번역물은 모두 저작권으로 보호되지 않나요?
A1. 번역 자체는 원칙적으로 2차적저작물로 보호될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은 번역 초고 중 '교감·표점' 부분이 학술적 사상 그 자체여서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며, 번역 전체의 보호 여부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Q2. 저작권 침해가 아니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나요?
A2. 그렇지 않습니다. 상당한 노력과 투자로 만든 성과물을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해 무단으로 이용했다면 민법상 불법행위나 부정경쟁방지법상 성과물 도용으로 책임을 물을 여지가 있습니다.
Q3.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는데도 책임이 생기나요?
A3. 계약 교섭 과정에서 보호할 만한 신뢰가 형성되었다면, 상대방은 그 신뢰를 배려할 의무를 부담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반해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하면 위법성이 더 쉽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 이 판결의 취지입니다.
Q4. 미리 해 둘 수 있는 대비는 무엇인가요?
A4. 자료 제공 전 비밀유지계약과 사용 범위 약정을 두고, 작업 경과와 제공 내역을 기록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교섭이 중단되면 반환·폐기·사용금지를 서면으로 요청해 두는 것도 이후 분쟁에서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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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저작권 보호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공들인 결과물이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협업이나 계약 교섭 과정에서 자료가 무단으로 쓰였다면, 저작권·부정경쟁·불법행위 중 어떤 근거가 가능한지 사실관계에 맞춰 차분히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사무소 제이 박경미 변호사는 이혼전문·형사전문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등록)로서, 상담부터 소송 종결까지 직접 사건을 챙깁니다. 문정 법률사무소와 잠실 예약상담 공간 중 편한 곳으로 예약하시면 지금 상황에서 가능한 선택지를 차분히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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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일반적인 법률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건의 결론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증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